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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미술 - 예술에대한 반대/무의식의 예술

'다다'는 반 예술주의 운동입니다. 1916년 취리히에서 시작하여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뉴욕으로 옮겨갔습니다. 다다 예술은 무례하고 때로는 분노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장 아르프의 종이 한장을 붙여놓은 콜라주 작품일 수도 있고, 마르셸 뒤샹의 낙서가 그려진 모나리자 엽서일 수도 있습니다.

 다다는 거의 모든 것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끔찍한 대학살이 일어난 후, 사람들은 문명사회의 개념을 심각하게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산업규모로는 최초의 전재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은 문화, 특히 전통 예술과 미학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습니다.

 다다 미술은 전통적인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공연, 시, 영화, 사진, 인쇄물등의 장르도 포함합니다. 다다 운동은 시인 트리스탄 짜라와 함께 나이트 클럽 '카바쿠라 볼테레'를 운영한 후고 발을 중심으로 시작됐습니다. 다다는 특히 예술의 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그 공연은 혼란스럽고, 공격적이고, 충격적이었습니다. 다다의 시는 쿠르트 슈비터스의 <우르 소나타>처럼 발음 그대로 표현하여 이해할 수 없는 소리의 리듬흐름으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더욱더 정치성을 띠고 있는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게오르크 그로스와 존 하트필드는 우익 민족주의의 증대를 목표로 풍자적인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한나 페프는 다다의 전복에 일상적인 잡동사니들을 포함하는 복잡한 콜라주를 만들어 냈습니다.

 위와 같은 다다 예술가들은 초현실주의자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1920년대에 작가 겸 시인 앙드레 부르통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는데, 유동적이지만 선택적인 주변 예술가들과 예술가 집단이 참여하였습니다. 장 알프, 후안 밀로, 앙드레 메이슨,살바도르 달리,프란시스 파카비아,이브 탕기, 막스 에른스트, 조르주 바타일 등이 있었습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문명의 개념을 거부하였습니다. 비합리성과 무의식적 개념에 의존하는 초현실주의 예술과 글쓰기 작품들은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깨달음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듯 하였습니다.

 초현실주의는 현실 너머, 현실을 초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에서 성장한 운동이라 하더라도 반예술주의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예술을 창조하는 것과 더 관련이 있습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초현실주의자들은 수많은 선언을 하고 단체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스타일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무의식, 우연, 금기같은 작품들에 고나심을 보였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900년에 꿈의 해석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무의식적인 사고가 사람들의 행동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정신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프로이트는 공격성과 같은 전통적인 인간 사회의 금기를 무의식의 근간으로 여기고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개인은 모두 문명의 적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적인 욕망을 초기 원시 문명의 행동과 연결시켰습니다. 라스코 벽화를 비롯한 초기 중 ㅛ문화권에서는 예술이 종교의식과 연계됐을 가능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인류학자 루시안 리부리우르는 저서 '미개척자의 생각' 에서 원시인들이 서양인들의 이성주의와 논리철학과는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하는지 설명했습니다. 마르셀 모스는 또한 기부라는 사회적 행위가 합리적이지 않고 신비주의와 마법의 요소를 가지고 있따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원시적인 것 자체에 초점을 맞춘 다른 예술가들과는 달리 초현실주의자들은 원시 예술이 가르치는 원시 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영적 세계를 밝혀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