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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램브란트 - 명과 암에서 탄생한 미술가(1)

'명과 암의 화가','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램브란트 할멘스존 반 레인은 자타공인 네덜란드 최고의 화가로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열면서 17세기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개성과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초상화에 재능을 보였고, <자화상>에서도 재능을 보였다. 그의 22세때의 자화상은 괴테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이에 탄생한 작품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괴테는 이 작품에서 꿈 없는 청춘은 시체나 다름이 없다고 말하며 우울하고 방황하던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였다.

 

램브란트는 1606년 7월 15일 네덜란드 레이덴에서 하르멘 헤리스트존 반 레인의 9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1620년 레이든 대학에 입학아여 제이콥 판 스바넨베리프 밑에서 도제 생활을 하며 회화와 목판 인쇄를 공부하였다. 1624년경 독립 화가로 호라동하다가 1630년경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여 역사 화가인 피터 라스트만을 스승으로 섬기고 도제학을 가르쳤다. 라스트만의 공방에서 그는 반년밖에 활동하지 않았지만, 이 시기는 렘브란트의 화풍을 결정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라스트만의 영향으로 장르적 구성, 완벽한 드로잉, 이상적인 인체 표현 등 고전적인 화법에서 벗어나 색다른 표정연기로 심리적 묘사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발람의 당나귀>,<토론하는 두 철학자>등 초기 작품들은 라스트만 특유의 화풍을 드러내고 있다.

 

램브란트는 예술가 헨드릭 윌렌버그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으며 1632년 암스테르담에서 외가의사 연합의 요청으로 첫  단체 초상화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를 완성하면서 가장 인기 있는 초상화가로 등극했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연을 그렸던 이 작품에서 램브란트는 그가 인간의 성격을 표현하는 데 더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634년 램브란트는 윌렌부르흐의 조카 사스키아 반 윌렌버그와 결혼했다. 그녀를 모델로 한 작품들은 <플로라 처럼 분장한 사스키아>,<깃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웃고 있는 사스키아>등으로 수많은 유화와 스케치를 이때 남겼다. 같은 해, 성 루가 길드에 가입하여 독립 장인의 지위를 얻기도 하였다. 램브란트는 윌렌버그로부터 독립하여 초상화가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초상화를 요구했고, 그는 성서 및 성서 역사 그림의 주문을 받아 화가로서 큰 명성을 떨쳤다.

 

램브란트의 그림은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가 특징으로 그림에 입체적인 효과를 보여준다. 이것은 16세기에 이탈리아 천재화가 카라바조에 의해 발명되었다. 램브란트는 독일 화가 아담 엘시머의 명암법에도 큰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