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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팝아트 - 다다이즘과는 다른, 상업성에서 피어나는 예술

1960년대 팝 아트의 대표적인 예는 앤디 워홀의 '수프 캔'과 로이 리히슈타인의 만화 그림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의 작품과 다른 대중예술 작품들은 예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미술과 대중문화의 관계를 되돌아 보는 작품들이 많다.

 

대중문화와 예술, 그리고 수준 높은 예술과 수준낮은 예술 사이에 항상 교류가 있었다. 근대 후기에는 여러 가지 양상이 있었으며, 프랑스 현실주의 화가 크루베의 회화, 다다 작가들의 작품, 입체파의 콜라주 등에서 볼 수 있는 팝아트의 흔적은 아상블라주에서 제작된 예술임이 분명하다. 아상블라주라는 말은 현실에서 3D사물의 콜라주를 예술 작품을 만드는 방식을 일컫는다. 입체파의 콜라주와 조각에서 발전하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상블라주는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까지 로버트 라우젠버그, 재스퍼 존스등의 프로토팝이나 네오다다 예술가들이 만든 미국 미술 작품들과 연결되어 있다.

 

프랑스에서는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1960년 포푸섬브라 특정 지부가 누보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누보 리얼리즘 선언'을 발표하면서 이 이름이 쓰였다. 예술가 이브 클랜은 이 그룹과 밀접한 고나계를 맺고 있으며, 그의 작품 중에는 현 시대의 정신이 많이 녹아 있는 작품도 있다.

 

팝아트는 원래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1955년 영국의 로렌스 알로웨이가 "팝아트"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그는 런던의 현대 미술 연구소에서 만난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의 인디펜던트 그룹의 일원이었다. 전쟁 후 단조로운 영국에서는 이제 막 미국에서 영국으로 수입되기 시작한 종이와 잡지를 포장하였고, 이에 많은 인디펜던트 단체들은 만화에 열광했다. 플레이보이, 매드 매거진, 에스콰이어 등 모든 자연색 출판물들은 예술가들에게 새롭고 예기치 않은 영감을 주는 원천인 '팝아트'로 평가받고 있다. 같은 그룹의 멤버인 리처드 해밀턴은 팝 아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중적, 순간적, 소비가 용이하고, 값싸고,대량으로 생산되고, 어리고, 재치 있고, 관능적이며, 요란하고, 매혹적이며,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하찮지 않은 큰 사업이다"

 

팝 아트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와 미학을 받아들이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팝아트는 자기만족보다는 침묵에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앤디 워홀이 인종 폭동을 다루는 수프캔과 캔버스를 전시하거나 리처드 해밀턴이 자동차와 광고를 그리는 것 둘다 우리 삶의 시대 집착에 비추어, 그 판단을 유보해 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하는 듯 보인다. 이런 비판적 거리는 팝아트의 강점 중 하나로 포스트모더니즘에 팝아트가 남긴 위대한 선물이다.

 

이러한 팝아트에서는 다다이즘과 같은 모더니즘과 그 문명에 대한 강한 비판을 찾기란 힘들지 모른다. 오히려 다다이즘에서 비판했던 상업주의, 자본주의를 찬양하고 있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중심에 대한 아웃사이더적 역할을 아주 통쾌하게 하고 있게 보이기도 하는 것, 그것이 팝아트이다.